방송이야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경제적 착취

*&^$*(&$*KDLKJF 2021. 1. 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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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역사’가 유행을 탄 지도 제법 오래입니다. 태풍처럼 휩쓰는 유행은 아니지만,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처럼 조금씩 길게 지속되는 유행인 듯합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신조어 ‘역녀’가 여기저기 사용됩니다. 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역사 관련 만화나 애니메이션, 스마트폰 게임이 인기를 얻기도 합니다. ‘아저씨의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역사가 대중문화와 결부되어 이제는 많은 사람이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한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경제적 착취, 위법행위 등 중대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사회윤리나 상상력, 지성의 결여에 있음이 부각되면서, 새삼스레 ‘교양’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원인은 여기에도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저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역사 로그-세계사 전문 블로그-’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이름대로 세계사를 전문으로 다루며, 일본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사건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순전히 취미생활의 일환이고, 주제도 제 생각에 재미있는 것으로 고릅니다. 논문이나 인터넷을 뒤져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즐기면서 동시에 교양도 쌓고 있는 셈이지요.


사실 역사를 비롯한 교양이 모든 이의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큰 도움을 주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구자나 저널리스트는 반드시 교양을 지녀야 합니다. 직업에 따라서는 역사에서 사회법칙을 배워 의사결정에 이용하거나, 철학에서 경영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삶이나 업무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힌트’를 역사에서 찾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닙니다. 타인의 인생이나 사상을 직접 자신에게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 일반인이 교양을 쌓으면 어떤 점에 도움이 될까요.
요즘에는 근력 운동도 유행하고 있죠.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도 헬스에 다니며 근육을 키우고 육체미를 가꾸려 합니다.
근력 운동과 교양은 근본으로 파고들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육을 붙여 어디에 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몸을 지키는 데 쓸 수도 있고, 큰 짐을 나르는 데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근육을 붙인다고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도움이 안 된다면 왜 근육을 단련하는 걸까요? 근력 운동 매니아에게 물어보니, ‘근육을 붙이면 자신감도 붙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짜증나는 사람을 만나도 ‘어차피 근육으로 싸우면 내가 이길 텐데 뭐’라고 생각하게 된다면서요.
교양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양을 쌓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어차피 교양으로 싸우면 내가 이길 텐데 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양을 쌓는 일에 쓸모가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세계사와 친하지 않았던 분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50개 항목으로 나누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각 지역의 역사를 조명해보았습니다. 또한 시대사와 지역사의 연결고리에도 주목하여 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지역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게 구성하였습니다.
교양으로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이나 인물을 외우는 차원을 넘어 그 배경에 있는 사회시스템, 매커니즘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으므로 세계사를 거의 공부한 적 없는 분은 종종 금방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마주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일단 뛰어넘고 이해되는 부분부터 읽어보세요.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세요. ‘뇌 근력 운동’의 결과로 뇌가 단련되었기에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유행어가 있었죠. 교양 역시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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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01 고대 이집트에서 보는 문명질서와 세계관
고대 이집트 왕조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마케도니아에 정복되는 기원후 332년(마케도니아에 정복)까지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국왕은 신들과 사람들 간의 중개하면서 우주의 질서 ‘마아트’를 유지하는 존재였다. 왕은 전염병이나 재해, 외적의 침입 등 무질서를 배제해야만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는 모두 재판에 처해진다고 생각되었으며, 이 재판에서 무사히 천국에 간 사람의 영혼은 ‘카’가 되었다. 왕의 카는 오시리스와 합일하여 질서를 가져오는 존재 ‘바’가 되어 부활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육체가 미라이다. 바가 된 왕의 영혼은 우주를 통치하며 ‘아크’라는 우주의 일부가 되는데, 왕의 영혼을 우주로 발사하기 위한 장치가 피라미드였다고 여겨진다.
피라미드의 건설은 이집트에 달력이나 천문학적 지식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농한기에 남는 노동력을 활용하는 공공사업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02 시민공동체와 노예제로 이해하는 고대 그리스사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시민의 총체인 시민공동체가 곧 국가라고 여겨졌으며, 시민이 사는 도시가 국가의 중심이었다. 공동체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패배한 공동체는 파괴되고 주민들은 노예가 되었으므로 시민은 자신의 공동체와 자유를 지킬 필요와 의무가 있었다.


발칸 반도에 미케네 문명이 꽃피고 사라진 뒤, 기원전 1000년경부터 각지에 폴리스가 건설되었다. 폴리스는 기원전 750년경 해외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며, 비그리스인과 접촉하면서 같은 언어․종교․문화를 공유하는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이 발달했다.


그리스인은 시민공동체를 유지하며 비그리스인을 배척했지만, 점차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비그리스인과 접촉하면서 시민공동체 질서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는 통일을 통해 시민공동체 질서의 유지를 꾀했다.

03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왜 인도까지 원정을 했나
그리스를 통일한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아시아의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까지 원정을 하며 영토를 넓혔다. 알렉산드로스는 적극적으로 페르시아(바르바로이)와 마케도니아(그리스)의 융합을 꾀하였으며,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에는 문화와 학문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선민의식을 가진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의 시민공동체’ 가치관을 답습했다.

04 적을 시민공동체에 포용하여 성장한 로마


기원전 753년에 성립했다고 알려진 로마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시민공동체로 형성된 사회였다. 그러나 그리스가 다른 지역 출신자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달리 로마는 세력 형성을 위해 외부인, 식민지 출신의 시민권도 인정했다.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로마는 기원전 4세기부터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병합하며 반도의 패권을 쥐었고, 점차 지중해 섬들과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까지 병합했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왕정에서 귀족에 의한 공화정, 평민이 참여한 공화정으로 이행했고 오랜 대외전쟁으로 장군의 세력이 커지면서 제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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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웃사이더’ 카이사르가 연 로마 제정의 길

 

카이사르는 전통 있지만 요직은 아닌 가문 출신이었다. 출세를 위해 막대한 돈을 쓴 카이사르는 기원전 62년 히스파니아 총독의 자리에 오른 뒤 히스파니아에서 전쟁을 통해 부를 챙기고 빚을 갚아나갔다. 이후 갈리아 속주 총독이 되어 갈리아에서도 전쟁을 벌였고 부와 함께 군사적 명성도 드높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포함한 로마 국내 평정과 치안회복, 농지법 제정, 율리우스력(태양력) 도입 등의 업적을 세우며 마침내 종신독재관에 취임했다. 카이사르의 일련의 개혁은 원로원과 호민관, 집정관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44년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자, 양자 옥타비아누스, 부하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가 제2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지만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립으로 내전이 발발한다. 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 칭호와 호민관 직권, 상급 프로 콘술 명령권, 콘술 명령권을 얻어 실질적인 황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