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고대 07 예수는 기독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 예수 그리스도 등장 전의 팔레스타인
전 세계 무수히 많은 종교 중 신자수가 가장 많은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세계 인구의 약 33%가 기독교도라고 하지요. 로마 제국 시대에 탄생한 기독교는 오랫동안 로마 황제와 시민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습니다. 그러나 로마 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차 신자수를 늘려갔고, 마침내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됩니다. 테오도시우스(*47)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으며, 로마 황제는 기독교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서양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서양 문명과 기독교는 거의 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아실 테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 제국의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원전 27년,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정적인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를 제거하고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얻어 임페라토르(황제)에 취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때를 로마 제국의 시작으로 봅니다.
로마는 제정 이전부터 확장을 거듭해 1세기에는 동쪽으로 유프라테스강, 서쪽으로 대서양, 남쪽으로 북아프리카 연안, 북쪽으로 도나우강과 라인강까지 지배했습니다. 광대한 토지가 단일 권력의 지배 아래 들어가며 사람과 물자와 돈이 안전히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서로 다른 권력과 제도, 습관, 언어 아래 있던 지역들을 제국 제도 안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투스는 내정 강화에 나섭니다. 한때 유다 왕국이 번영했던 팔레스타인도 제국의 일부로 통합되려는 차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142년부터 하스몬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으나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흑해 연안의 폰투스 왕국을 제압한 이후 로마의 영향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여왕 살로메 알렉산드라의 두 아들이 후계 싸움을 벌이자 로마는 여기에 개입해 카이사르에 협력한 경력이 있는 안티파토스를 국왕으로 세웠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후 안티파토스의 아들 헤로데가 왕이 되었고, 헤로데 사후에는 세 아들이 분할통치를 시도하지만 실패하면서 기원후 63년 유다 왕국의 땅은 ‘유다 속주’로서 로마 제국에 통합되었습니다. 국왕이 폐위되고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 유다를 통치하기 시작하자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었습니다. 강경파는 무력 저항으로써 유다 땅에서 로마를 몰아내고자 했으며, 온건파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신에게 기도하며 왕국을 재건해줄 구세주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사회는 불안해지고 세계의 종말이라는 예언이 돌며 사람들은 간절히 신에게 기도하는 시대. 그노시스주의(*48)의 시조라 여겨지는 시몬 마구스나, 네오피타고라스파(*49) 철학자이자 마술사로 명망 높던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 등 많은 ‘구세주’가 나타나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신앙을 얻던 시대였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
예스 그리스도 또는 ‘나사렛 예수’는 현재의 팔레스타인 자치구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이 북부 나사렛 출신이었으므로 예수는 나사렛에서 청년기를 보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30세,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의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사이 사막에서 살던 고행자로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종교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에게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계속해서 설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하느님의 나라’가 곧 로마에게 멸망당한 유대 왕국이며, 예수가 구세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재건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수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회개하라, 하느님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말라, 부활과 심판에 이르는 종말이 가깝다는 이야기만을 했습니다.
예수는 경건한 유대교도로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유대의 축일을 지키며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유대교의 전통에서 비유나 암시를 인용했습니다. 예수는 유다 왕국을 재건해 왕이 되거나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기독교’를 만들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고, 형해화한 유대교의 가르침을 되찾아 타락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그들이 신심 깊은 삶을 살도록 이끌고자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예수는 철학적인 주제는 일절 다루지 않고 삶의 자세, 인생의 목적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가 가장 중시한 것은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지요. 가장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면 가족이나 친구,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온화함과 겸허함을 겸비하게 되며, 적을 사랑하여 악의를 선의로 되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 손을 내밀며, 어떤 사람에게든 동정과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카리스마적이면서도 약자에게 남달리 자애로웠으며 아이들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예수는 만만치 않은 논객이었습니다. 비판에도 기지를 발휘해 응수했으며 자기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대답을 요구했고 무시하고 가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 주위에는 점차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핵심 멤버는 베드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의 동생 요한,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시몬, 이스카리옷의 유다. 이들은 ‘12사도’로 불리며, 후에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 사후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 ‘원시 기독교 교단’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