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리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들 블레어 셰퍼드는 PwC International Network의 회장 Bob Moritz와 2016년에 나눴던 대화에서 이 책의 영감을 얻었다. 셰퍼드와 모리츠는 각각 4개 대륙을 돌아보고 돌아온 후였다. 두 사람 모두 여행 뒤에 세상이 과거보다 더 암울해지고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셰퍼드는 모리츠와의 대화 이후 2년간 전 세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 사회적 지위고하와 국적 언어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걱정과 염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셰퍼드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조사를 통한 결론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데이..

고대 07 예수는 기독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 예수 그리스도 등장 전의 팔레스타인 전 세계 무수히 많은 종교 중 신자수가 가장 많은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세계 인구의 약 33%가 기독교도라고 하지요. 로마 제국 시대에 탄생한 기독교는 오랫동안 로마 황제와 시민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습니다. 그러나 로마 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차 신자수를 늘려갔고, 마침내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됩니다. 테오도시우스(*47)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으며, 로마 황제는 기독교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서양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서양 문명과 기독교는 거의 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아실 테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

46 속고 속이며… 영화와 같은 2차대전 속 모략전 2차 세계대전은 이전까지의 전쟁과 달리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어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 정보나 모략이 고도로 구사된 것도 이전의 전쟁과 다른 양상이었다. -거짓말로 베오그라드를 함락시킨 나치 장교: 1941년 나치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당시, 장교 프리츠 클링엔베르크는 베오그라드에 병사를 보내 시청에서 유고슬라비아 국기를 내리고 나치 독일기를 게양하게 했다. 놀라 찾아온 베오그라드 시장에게 그는 ‘베오그라드 시가 항복했다는 내 보고가 없으면 폭격기가 공격해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거짓말이었으나, 베오그라드는 바로 항복했고 클링엔베르크는 후에 훈장을 수여받았다. -소련에서 활약한 샤혼 부대: 역시 거짓말로 소련이 독일을 속인 작전이다. 소련군은 ..

39 또 하나의 태평양전쟁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남미 국가들은 식민지 시기부터 내려온 이권이나 자원을 둘러싼 영유권 문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빈번히 전쟁에 빠졌다. 먼저 반다 오리엔탈(현재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주변)을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분쟁이 일어났다(시스플라티나 전쟁). 전쟁의 결과로 반다 오리엔탈은 ‘우루과이 동방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우루과이는 독립 후 바로 파벌이 갈라졌고, 각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차지하려 싸웠다(우루과이 전쟁). 전쟁 종료 이후에도 분쟁은 가라앉지 않고 우루과이는 내란상태로 남았다. 브라질의 인접국가 개입은 내륙의 파라과이를 경계시켰고, 파라과이는 군사력을 키워 브라질에 침입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삼국동맹을 맺고 파라과..

34 중국 사상과 서양 사상을 융합하려는 중국인의 눈물겨운 노력 1840년 영국과 청과의 사이에 벌어진 아편 전쟁의 결과 청은 반식민지 상태에 빠졌다. 위기감을 느낀 관리와 지식인들은 몇 차례에 걸쳐 근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흠차대신 임칙서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아편을 금지함과 동시에 문인들의 ‘경세제민’ 활동을 지원했다. 위원은 에서 서양의 군비와 훈련법을 채용하여 외국의 침략에 대항하자고 호소했는데, 이처럼 서양의 힘을 빌려 강국화하고자 하는 운동을 양무운동이라고 한다. ‘중국의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타 국가들의 기술로 보완한다’는 중체서용, 도기론 등의 이론은 특히 젊은 엘리트들이 지지했다. 1890년대에는 황제의 협력 아래 이들이 변법운동을 전개했다. 서양의 산업이나 군사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29 국왕의 이혼 때문에 종교혁명이 일어난 잉글랜드 헨리 8세가 첫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로 잉글랜드 교회의 독립을 선언한 후 잉글랜드는 프로테스탄트화의 길을 걸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카톨릭 탄압은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스페인을 자극했다. 스페인은 잉글랜드에 무적함대를 보내 점령하려 했으나 아르마다 해전에서 대패하고, 이후 스페인은 몰락의 길에, 영국은 강성의 길에 접어들었다. 엘리자베스 사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되고 영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지배중인 아일랜드의 종교는 저마다 달라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의회도 왕의 카톨릭 우대를 규탄하는 의회파와 국왕파 둘로 나뉘어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청교도혁명의 ..

22 인도의 역사와 전통 앞에 좌절한 무갈 제국 풍요로운 토지가 펼쳐진 북인도는 중앙아시아나 서북아시아 이민족들의 정복을 수차례 경험했다. 11세기에는 이슬람이 침공해왔고, 13세기에는 터키계 무슬림에 의해 델리 술탄조가 성립했다. 16세기에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바부르가 무갈 제국을 세웠다. 바부르는 인도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저 사마르칸트 탈환을 위한 자금을 모아서 떠나려 했으므로 인도의 민중을 착취하는 정책을 폈다. 이에 비해 3대 황제 아크바르는 인도에서 나고 자라 인도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무슬림이 힌두교도를 착취하는 구조로는 한계가 올 것이라 판단하고 힌두교도와 힌두교 문화를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아크바르는 통치시스템 개혁도 시도했다. 지방 세력을 모아 장교로 임명하고 지위에 따라 급여를..

14 형제싸움에서 탄생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로마 제국 시대 갈리아라고 불렸던 지역은 서로마제국 해체 후 메로빙 조 프랑크 왕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크 왕들은 아들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듯 국토를 분할시켜주었기에 영토가 자주 분할과 통일을 반복했다. 분할된 북동부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에서 궁재를 담당하다가 프랑크 왕국의 궁재가 되는 등 힘을 키워가던 카롤링 가는 751년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 카롤링 조 프랑크 왕국이 들어선다. 카롤링 조 프랑크 왕국은 카를 대제 대에 군사원정을 통해 현재 서유럽 대부분을 정복했으며, 800년에는 프랑크의 왕이 서로마황제로 임명되어 기독교 수호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9세기경 영토 분할 문제로 프랑크 왕국에는 내전이 일어난다. 반복된 반란과 진압 끝에 루이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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